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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Special

알쏭달쏭 트럼프의 랜덤박스…희망도 있다

작성자  조회수389 등록일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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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스페셜
알쏭달쏭 트럼프의 랜덤박스…
희망도 있다

 


내년 1월 취임을 앞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입에 전 세계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습니다. 랜덤박스처럼 예측불허로 유명한 그의 발언과 행동에 산업계와 금융가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지요. 관세 인상,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같은 공약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도 있습니다. 한국 조선업을 향한 트럼프의 러브콜이 대표적입니다. 

 


Chapter 01
트럼프가 콕 집어 손 내민 K-조선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 국가주력산업 전반의 어려움 속에서도 K-조선은 나 홀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세계 1위의 중국 조선업이 공격적인 수주로 컨테이너 상선을 싹쓸이하고 있지만 수익성이 높은 LNG와 암모니아 운반선 등에서는 한국 조선사들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를 쉽게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 LNG선 (출처=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영하 163도의 초저온 액화천연가스를 안전하게 운반해야 하는 LNG선은 국내 조선업계의 호황을 이끄는 고부가가치 선박입니다. 건조 난이도가 높아 한 척당 가격이 2억 달러 이상인데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의 63%를 차지하고 있지요.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LNG 수출을 본격화하면 100척 이상의 신규 발주로 한국의 경쟁력을 더욱 견고히 할 것이라는 게 조선업계의 전망입니다.

 

 

삼성중공업 암모니아 운반선 (출처=삼성중공업 홈페이지)


LNG선과 함께 점점 수요가 늘고 있는 암모니아 운반선도 큰 호재입니다. 암모니아 운반선은 LNG선과 제작 방식, 운용 방법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암모니아의 독성 때문에 별도로 특수창을 달아야 해서 10% 정도 가격이 더 비싼데요. 최근 암모니아 운반선 발주가 크게 증가한 배경으로는 먼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들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암모니아 교역량의 17%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입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흑해의 주요 항구들이 봉쇄되면서 암모니아 운반선의 항해 거리가 길어지게 되었고 새로운 선박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암모니아 운반선 발주는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이후 155%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해운사들이 암모니아 운반선 발주를 늘리는 또 다른 이유는 범용성입니다. 최근 높아진 LNG 수요와 함께 암모니아 시장 확대에도 대응할 수 있는 옵션으로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암모니아 운반선을 발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지요. LNG 선으로 암모니아를 나르긴 어렵지만, 암모니아 선이 있으면 LNG와 암모니아를 모두 나르는 게 가능합니다.

 


Chapter 02
수소 싣고 다니는 암모니아 운반선

 

현재 암모니아 생산량의 90%는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데 이용됩니다. 더불어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로 친환경 연료인 수소의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암모니아의 수요는 더욱 늘고 있습니다. 암모니아가 저장과 운송이 까다로운 수소의 아주 효율적인 운반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수소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부피당 에너지 밀도 역시 매우 낮은 물질입니다. 그래서 영하 253도로 액화해 고압수소탱크로 옮겨야 하는데요. 수소와 질소의 화합물인 암모니아(NH3)는 영하 33도로 쉽게 액화할 수 있고 상온에서도 쉽게 액화가 가능하여 저장과 운송이 용이합니다.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밀도도 같은 무게의 액화수소보다 1.7배 더 높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대부분 장거리 해상 운송을 통해 수입한 암모니아에서 수소를 추출해 사용하는데요.
 
하지만 암모니아에서 수소의 원자를 분리해 기체 상태의 분자로 재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루테늄이라는 고가의 귀금속 촉매가 필요했습니다. 2022년 화학연 연구진은 이 비싼 촉매 대신 저렴한 비 귀금속 촉매를 사용하면서도 암모니아를 분해하는 효율은 더욱 높이는 ‘암모니아 수소 전환용 고성능 분해 촉매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암모니아의 수소 전환 이용을 더욱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지요. 

 


한국화학연구원 채호정 박사 연구팀이 암모니아를 활용해 수소를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촉매 공정을 개발했다. (좌측부터 화학공정연구본부 김영민 박사, 채호정 박사, Do Quoc Cuong 박사, 김거종 박사)

 


Chapter 03
화석연료 지지해도 CCU 투자는 계속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첫 대통령 임기 때인 2019년에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며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낳은 바 있는데요.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는 두 번째 임기 때도 바이든 대통령 시절 재가입한 국제협약에서 다시 탈퇴할 계획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지지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전 정부가 해온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기술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셰일가스가 강점인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이 전 세계적인 탈탄소 정책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대비해 CCU 기술 개발에 많은 공을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셰일가스 덕분에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며 중국에 밀려 휘청거리던 제조업 경쟁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미 의회에 계류 중인 청정경쟁법안(Clean Competition Act, CCA)도 트럼프의 CCU 투자를 전망하는 주요 근거입니다. 이 법안은 석유화학, 제철, 비료, 시멘트, 제지 등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에서 미국 내 해당 산업 평균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수입품과 자국 제품 모두에 일종의 탄소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배출집약도가 낮은 미국 제조 기업에 유리하게끔 설계가 되어 있어 공화당도 지지해 온 데다가 관세인상을 천명한 트럼프 당선인에게도 추가 세수 확보라는 명확한 실리가 있어 당초 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Chapter 04
석유화학산업 파고 헤치는 길잡이

 

따라서 CCU 연구개발은 중국산 저가공세, 중동 산유국의 범용제품 직접생산에 흔들리는 우리 석유화학산업이 레드오션을 벗어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향하는 데 무척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상징하듯 한국무역협회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과 관련한 기술과 제품의 대미 수출액이 2020년 1억 7,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억 달러를 웃돌 정도로 늘었다고 전하는데요. 

 

 

미국 전역에서 채굴되는 셰일가스의 주성분은 75~90%가 메탄입니다. 이를 냉각시켜 액체로 만드는 것이 LNG이지요. 이와 관련해 화학연에도 주목받는 기술이 있습니다. 온실가스인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합성시켜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합성가스로 전환하는 이산화탄소 건식개질 기술입니다. 화학연은 지난해 연간 생산량 8천 톤 급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화탄소 활용 건식개질 플랜트를 울산에 구축했습니다. 이 기술은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산소계 화합물, 플라스틱 같은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일산화탄소와 함께 수소를 만드는 것인데요. 기존의 스팀개질 기술과 달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후속공정을 유지하며 부가가치가 높은 기초 원료를 만들 수 있게 하는 탄소중립형 CCU 기술입니다. 

 

산산업단지내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8000t의 합성가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산화탄소 활용 건식개질 플랜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은 그 방향과 규모를 쉽게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지 위기라고만 볼 일은 아닙니다. 큰 변동성은 곧 또 다른 큰 성장의 변곡점이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역시 꾸준한 준비입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지요. 흔들림 없는 연구개발로 한국의 화학 산업을 이끌어온 화학연의 뚝심이 출렁이는 에너지 산업의 파고 속에서 다시 한 번 든든하고 믿음직한 방향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