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People&Collabo

다세포 가족의 ‘따로 또 같이’

작성자  조회수324 등록일2024-12-24
스토리.png [14,736.9 KB]

KRICT 스토리
다세포 가족의 '따로 또 같이'

 


김현우 박사(희귀질환치료기술연구센터)는 세포를 관찰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세포와 조직이 자라면서 모양이 바뀌고 발현되는 단백질이 변하는 양상을 화학적·물리적 방법으로 측정하는 일이지요. 김 박사의 진지한 관심사는 실험실 배양 시스템 속의 세포와 조직만이 아닙니다. 세포 분열과 유전으로 이룬 그의 가족 공동체가 또 어떻게 분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탐구와 성찰의 대상입니다. 


김현우 박사가 화학연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연구’였습니다. 대기업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며 자신의 꿈이 비즈니스가 아닌 연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 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때 마침 그의 전문 분야인 탐침증강 분광현미경 연구자를 찾는 화학연의 공고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학위과정 중에 견학을 오며 연구 환경과 분위기를 익히 알고 있던 연구실이었던 까닭에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3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양육자가 된 그로서는 본인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붙잡아준 것 역시 가족, 그중에서도 아내의 이해와 지지가 이직과 대전 이주라는 결코 쉽지 않은 중대사의 결정에 큰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 와서는 넷째 귀여운 공주님이 태어났습니다.

 


김 박사는 이제 새로운 일터인 화학연에서 자신의 적성을 맘껏 살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한 희귀질환치료기술연구센터는 척추소뇌운동실조증, 겸상적혈구빈혈, 부신백질이영양증 같이 일반인은 평생 한 번 들어보기도 힘든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첨단 신약과 치료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세포와 조직에서 일어나는 약물의 효능과 독성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세포를 배양하는 바이오 시스템의 환경 변화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포의 생장과 변화는 주로 형광신호나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특정 단백질에 달라붙는 형광염료를 이용하는 방식은 생화학적 측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와 조직에서 발현되는 약물의 효과를 영상으로 시각화해서 볼 수 있지만, 측정 마지막 단계의 정보만 얻을 수 있다는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반면 김 박사가 관심을 쏟고 있는 비침습 실시간 측정은 세포와 조직의 부드러움과 딱딱함 정도를 나노탐침으로 직접 눌러서 측정하거나, 세포·조직이 생장하는 배양환경의 성분 변화를 산화환원 전류로 측정하는 전기화학적 측정기술들입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약효에 따라 세포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화학적 레이블링이라는 중간과정 없이 직접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김 박사의 연구는 정해진 근무 시간만 집중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실험을 위한 준비에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렇다고 마냥 직장에만 몰두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는 돌봐야 할 또 다른 바이오 배양 시스템, 어쩌면 더 거대한 복잡계라 할 수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것도 요즘 보기 드문 4명의 다둥이에 강아지, 고양이까지 합세한 대가족이지요. 그래서 잡다한 준비를 끝내고 가까스로 실험을 본격화할 찰나에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을 데리러 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연구자라면 누구도 공감하는 더없이 허탈한 순간일 테지요.

 

 

하지만 지금은 가족에게도 부모의 존재가 무척 중요한 때입니다. 특히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세포 분열이 왕성한 사춘기 자녀들이 한가득인 만큼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김 박사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대한 계획적으로 가정에서의 시간을 관리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학교와 학원으로 바빠진 세 아들과 막내딸, 아내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인 저녁식사 자리는 가능한 각자의 하루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곧 중학교에 진학하는 둘째와 셋째 아들의 공부를 도와줍니다. 첫째 아들에게 관심을 쏟던 초보 아빠 시절에는 ‘모르면 될 때까지’ 연습을 밀어붙이곤 했는데, 그럴수록 멀어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게 된 뒤로는 최대한 욕심을 버리고 함께한다는 데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 목표와 기대치를 낮춰 보다 즐겁게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주말에는 수영장도 같이 가고 게임도 함께하며 가족애를 높입니다. 게임에 많은 시간을 쏟는 걸 싫어하던 아내도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며 투덕거리는 와중에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자지간의 모습에 한결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서로 얼마나 지고 싶지 않은지 “5+7은 10이다, 아니야 11이야” 하며 틀린 답을 놓고도 바보처럼 다툴 만큼 강력한 라이벌이던 둘째와 셋째 연년생 형제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로 변화하는 데 게임이 소중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듯합니다.

 


김 박사 부부는 이렇게 많은 자녀들과 함께하는 대가족의 삶이 결코 좋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태가 어떠하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모든 가족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을 일구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을 꿈꾸고 있다면, 미래가 불안하더라도 한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생명현상의 가장 기초 단위인 세포들이 모두 완벽하지는 않아도 저마다의 특별한 가치와 역할로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혼자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을 가족이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