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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달콤한 대체 감미료의 세상

작성자  조회수232 등록일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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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칼럼

화려하고 달콤한
대체 감미료의 세상

글 |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무(無)열량’을 뜻하는 ‘제로 칼로리’를 강조하는 음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설탕·과당·올리고당과 같은 저분자량 탄수화물의 단맛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던 음료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현대 화학 기술이 만들어낸 ‘대체 감미료’와 ‘대체 향(香)’ 덕분이다.

달콤한 음료의 과도한 열량에 의한 비만 등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에게 제로 칼로리 음료는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이다. 당뇨와 같은 기저질환으로 단맛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포기해야 했던 소비자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제로 칼로리 음료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새로 등장한 낯선 음료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대체 감미료와 대체 향 성분의 낯선 이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과 두려움은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함부로 탓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겁을 낼 이유는 없다. 제로 칼로리 음료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대체 감미료는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 검증에 합격한 것이다. 뱀독이나 독버섯과 같은 치명적인 ‘급성’ 독성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장기간에 걸쳐서 상당한 양의 대체 감미료를 지속적·반복적으로 섭취하는 소비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만성 독성의 가능성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불순한 의도로 엉터리 가짜 뉴스를 쏟아내는 정체불명의 인터넷과 무책임한 황색 언론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현명한 소비자의 자세가 아니다.

 

 

단맛은 원초적 욕구

 

단맛은 우리가 오랜 진화를 통해 획득한 가장 원초적인 욕구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본능적으로 단맛을 좋아한다. 인간만 단맛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대장균(E. coli)과 같은 미물(微物)도 단맛에 반응한다. 나뭇잎을 뜯어 먹고 사는 영장류가 오래된 잎보다 새순을 좋아하는 것도 단맛 때문이다. 어린 새순에는 단맛을 내는 탄수화물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고, 질긴 섬유질이나 건강에 해로운 독성 성분이 누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콤한 음식과 음료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인류학적 전통이 아니다. 현대 과학에서 단맛은 포도당(glucose)의 맛이다. 가장 단순한 탄수화물인 포도당 분자가 혀에 있는 단맛 미뢰(味?)의 GPCR(G-단백질 결합수용체)을 화학적으로 자극해서 느껴지는 맛이 바로 단맛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혀를 통해서 포도당의 단맛을 애써 확인하는 데는 분명한 생리적 이유가 있다. 포도당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源)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가장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뇌는 포도당만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충분한 양의 포도당을 섭취하지 못하면 뇌를 비롯한 조직·기관이 생리적 기능을 상실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혈액에 녹아있는 포도당의 양이 지나치게 줄어들 때 발생하는 ‘저혈당 쇼크’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경고다. 사탕이나 설탕을 입에 넣기만 해도 위기를 넘길 수 있다. 달콤한 설탕이 생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라는 뜻이다.

단맛을 내는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는 꿀벌이 모아놓은 ‘꿀’이 가장 일반적인 ‘감미료’였다. 그러나 생산량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꿀은 귀족이나 즐길 수 있었던 귀한 사치품이었다. 숲에서 꿀을 몰래 채취해서 먹는 일은 심각한 범죄였다. 심지어 과당 덕분에 달콤한 맛을 자랑하는 과일이나 시럽, 또는 녹말(starch)을 가공한 올리고당이나 당(糖)알코올도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도에서 생산한 ‘설탕’이 귀한 자연산 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탕이 본격적으로 생산·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였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생산의 역사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아픈 기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구한말 하와이와 남미로 떠났던 우리의 이민 1세대도 힘겨운 사탕수수 재배에 동원되었다.

 

 

그런 설탕이 지천으로 넘쳐나게 된 것은 20세기의 놀라운 기술 발전의 결과다. 지금도 설탕은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교역 상품이다. 그러나 무엇이나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설탕도 예외가 아니다. 값싸고 흔해진 설탕의 지나친 소비가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역설적인 일이다.

 

 

화려한 대체 감미료의 세계

 

오늘날 꿀이나 설탕을 대체해서 사용하고 있는 대체 감미료는 화려하다. 스테비아·알룰로스·에리스리톨·자일리톨과 같은 천연 감미료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자일리톨은 사슬 모양의 펜테인(펜탄)에 여러 개의 하이드록시기(-OH)가 결합되어 있는 다가(多價) 알코올이다. 자작나무가 많은 핀란드에서 19세기에 처음 생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수수대를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도 자일리톨 때문이다.

자일리톨은 입에 넣으면 시원하게 느껴지고, 뒷맛이 남지 않는다. 혈당이 높아지지도 않고, 열량도 높지 않다. 껌에 넣은 자일리톨은 충치를 막아주고, 손상된 에나멜을 복구해주는 등 구강 보건에도 도움이 된다. 효모의 일종인 열대성 칸디다 효모를 이용해서 자일리톨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첨단 유전공학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천연 감미료가 더 건강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은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천연 감미료인 꿀·과당·올리고당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설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탕이 생산과정에서 표백 공정을 거친 ‘정제당(精製糖)’이라서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어설픈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순물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황당한 억지일 뿐이다. 무엇이나 더 깨끗하고 순수한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사카린처럼 현대 화학적 합성 기술로 생산하는 아스파탐·수크랄로스·사이클라메이트·아세설팜포타슘·당(糖)알코올 등의 합성 감미료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합성 감미료는 소화 과정에서 몸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배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첨가물로 승인된 합성 감미료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은 양을 먹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안전한 식품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설탕의 지나친 소비를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호들갑을 떨 일이 절대 아니다. 단맛에 대한 요구를 적절하게 억제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