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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빈대·이·벼룩을 잡으려면 ‘살충제’가 꼭 필요하다

작성자  조회수159 등록일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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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칼럼

 

빈대·이·벼룩을 잡으려면

‘살충제’가 꼭 필요하다

글 |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에써 퇴치했던 빈대(bed bug)가 40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모양이다. 지난 10월 중순 대구에 있는 대학의 기숙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보건소에 신고됐다. 빈대 출현 소식은 곧바로 인천의 찜질방과 부천의 고시원을 거쳐 2주 만에 서울 전역으로 퍼져버렸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18개의 기숙사·고시원·모텔·사우나·찜질방·식당에서도 빈대가 확인됐다.
세계 최고의 보건·위생 환경을 갖춘 선진국인 미국·영국·프랑스도 빈대·이(louse)·벼룩(flea)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공중보건 위기’를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서는 중학교가 빈대 때문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심지어 지하철 의자 틈새에서 빈대가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던 빈대·이·벼룩의 전 세계적인 재확산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으로 해외여행이 부쩍 늘어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고 가구의 유통이 늘어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빈대·이·벼룩의 귀환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야행성의 작은 해충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현실적으로 살충제를 이용한 화학적 퇴치 기술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던 빈대

 

성충의 크기가 5밀리미터 정도로 작고 납작한 몸을 가진 빈대는 노린재목에 속하는 곤충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음식에 넣는 향신료인 고수와 비슷한 독특한 노린내를 풍겨서 ‘취충’(臭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빈대는 인류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등장했다.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쥐를 비롯한 포유류·조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빈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75종(種)이 서식하고 있다.

빈대는 기후가 온화한 곳이라면 어디에나 서식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따뜻하게 난방을 하는 실내를 좋아한다. 빈대는 매트리스·가방·가구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활동을 시작한다. 모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에게 물리는 일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성가신 일이다. 피부 발진과 가려움도 훨씬 더 심하다. 빈대는 주로 생활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을 심하게 괴롭힌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다시 등장한 빈대는 피부 발진과 가려움을 일으키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빈대를 발견하면 보건소에 신고를 해야 한다. 보건소가 빈대 퇴치를 위한 비책(?策)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빈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 고작이다. 빈대의 퇴치를 위한 노력은 개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빈대와 달리 이와 벼룩은 고약한 감염병을 옮겨주는 매개체다. 이는 ‘감옥열·참호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티푸스라는 심각한 열병(熱病)을 옮겨준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에 따르면 지금도 매년 500만 명이 티푸스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벼룩은 흑사병(페스트)을 퍼트리는 주범이다. 중세에 전 세계적으로 기승으로 부렸던 흑사병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페스트를 일으키는 예르시니아 제스티스라는 균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중국 등에서 산발적으로 흑사병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초가삼간을 태워버릴 수는 없다

 

가구나 벽의 작은 틈새에 숨어서 살면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의 작은 빈대를 퇴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작고 납작한 빈대를 일일이 찾아내서 잡을 수도 없고, 작은 틈새에 숨겨진 빈대의 알을 확실하게 찾아내서 제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결국 화학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살충제’(pesticide)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농약·살충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제충국의 꽃을 말려서 만드는 천연 농약이 있었다. 그러나 제충국을 비롯한 천연 농약은 효과도 제한적이었고,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뛰어난 효능을 가진 살충제를 비롯한 현대적 합성 농약은 20세기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화학공장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합성 농약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 성가신 빈대·이·벼룩을 퇴치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세계 인구를 5배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준 현대의 화학산업이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통해서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역설적인 일이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농약이 핵심 전쟁물자였던 사실도 뜻밖이다. 전투 현장에서 적군의 공격보다 더 두렵고 성가신 것이 치명적인 감염병을 옮겨주는 모기·이·벼룩과 같은 해충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엉뚱한 목적으로 농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농약으로 해충이 아니라 적군과 유태인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서 개발한 살충제가 느닷없이 적군을 공격하고, 유태인을 학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화학무기’로 변신하기도 했다. 농약을 개발하던 화학자들이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 개발에 동원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질소 고정법을 개발한 독일의 프리츠 하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버가 프랑스와의 전선에서 처음 사용한 염소 독가스의 개발을 주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 클라라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빈대 퇴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도 전쟁을 위해 개발된 유기염소계 합성 살충제다. DDT가 곤충의 신경전달 세포를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스위스의 화학자 폴 뮐러였다. DDT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말라리아와 발진열(발진티푸스)을 전파하는 이는 물론 빈대와 벼룩의 퇴치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다. 뮐러는 그런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흰색 분말 형태의 DDT는 1945년부터 농약으로 공급되었고, 1955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전 세계에 DDT를 대량 살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보건의료 체계가 정비된 지역에서는 DDT를 이용해서 해충 퇴치에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6.25 전쟁 당시 어린이들에게 DDT를 뿌려주고 있다.

 

우리도 1970년대까지 빈대·이·벼룩을 퇴치를 위해 많은 양의 DDT를 사용했다. 심지어 이(louse)를 퇴치한다는 핑계로 DDT 분말을 직접 몸에 뿌리기도 했다. DDT가 우리를 ‘빈대 청정국’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나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DDT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DDT에 내성을 가진 모기와 빈대·이·벼룩이 등장했다.

 

 

자연과의 쉽지 않은 공존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되면서 DDT의 환경 독성에 대한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 DDT 자체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에서 DDT가 쉽게 분해되지 않고 잔류하는 것이 문제였다. DDT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성되는 다이옥신(에이전트 오렌지)의 독성도 심각했다. 결국 1972년 스톡홀름 회의에서 환경 잔류 가능성이 큰 DDT를 비롯한 유기농약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다. 우리도 1971년부터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1979년부터는 생산과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만 했다.

DDT의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빈대·이·벼룩의 퇴치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열에 약한 빈대의 경우에는 섭씨 40도 이상의 수증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 독성의 우려가 없으면서 DDT만큼 효과적인 살충제는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천연 살충제는 제충국에 들어있는 피레스로이드 성분을 이용한 빈대 퇴치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살충제가 직접 닿기 어려운 작은 틈새에 숨어있는 생태적 특성이 빈대의 퇴치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다.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일깨워준 것은 농약 자체가 아니라 농약을 핑계로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외면해버린 비윤리적인 농약 제조사였다. 물론 농약 제조사와의 야합으로 권력과 부를 누리던 정치인들의 폐해도 심각했다. 카슨의 주장은 더욱 안전한 농약을 안전하게 생산해야 하고,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윤리적인 기업을 위해서 자신들의 재능을 함부로 써버린 화학자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화학자도 환경을 지키는 노력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렇다고 건강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해주는 기술도 함부로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