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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도를 넘어선 발암물질에 대한 공포

작성자하이브파트너스  조회수1,009 등록일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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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팩트체크

도를 넘어선 발암물질에 대한 공포

글 |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과)

발암물질에 대한 공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발암물질을 한 번이라도 먹거나 만지기만 하면 당장 암에 걸린다고 겁을 낸다. 심지어 공원이나 산책로에 놓여있는 조경석도 안심할 수 없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석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기지의 토양·지하수도 벤젠·다이옥신·비소 등의 발암물질 범벅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입장이 난처하다. 온 세상이 발암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발암물질에 대한 도를 넘어선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의학·식품·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렇다. 심지어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예외가 아니다. 박테리아에서 유전독성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새로 등장한 발색 샴푸에 들어있는 첨가제인 THB(1,2,4-트라이하이드록시벤젠)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1군 발암물질은 54종뿐

우리가 암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단과 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완치율이 60%를 넘어섰지만 암은 여전히 치명적인 질병이다. 암의 발생 원인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유전체(게놈)에 손상이 생기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사선·X-선·자외선·독성 물질 등이 모두 그런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발암성은 대표적인 만성 독성이다. 급성 독성물질처럼 즉각적으로 독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반복·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만 암이 발생하게 된다. 어쩌다가 몇 번 상당한 양의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고 반드시 암에 걸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인체 발암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기진단과 함께 생활환경에서 발암 요인을 제거해 암 발생 위험을 예방하는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 산하의 IARC(국제암연구소)가 1970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발암물질 목록’이 그런 노력의 결과이다.

화학물질의 발암성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직접적인 인체 실험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용납되지 않는다. 결국 시험관에서의 세포 실험이나 쥐·어류 등을 이용한 동물 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집단발병에 대한 역학(疫學)조사의 결과도 유용하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소개되는 전문가들의 발암성 관련 소식은 제한적인 세포·동물 실험의 결과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포·동물 실험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의 종(種)에 따른 발암성의 차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쥐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에게도 암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IARC가 인체 발암성을 확인해서 ‘1군(Group 1)’으로 분류하는 화학물질은 고작 54종뿐이다. 인공적으로 생산한 합성 화학물질은 모두 발암물질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다. 실제로 IARC가 발표한 ‘발암물질 목록’의 절반은 동물 실험에서도 발암성을 확인할 수 없는 ‘3군(Group 3)’이다.

화학물질만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간염 바이러스를 비롯한 7종의 바이러스, 헬리코박터와 같은 박테리아, 간흡충(간디스토마)을 비롯한 3종의 기생충도 암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여전히 좋아하는 술·담배·젓갈·숯불·아플라톡신·미세먼지·가공육·자외선도 1군 발암물질이다.

1군 발암물질이라고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이고 즉각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세포의 유전물질인 DNA에 손상이 발생해야만 암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인체에는 DNA의 손상을 방지·복구하는 메커니즘이 마련되어 있다.

1군 발암물질의 독성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00만 명이 넘고 개방형 연소(부엌)에서 발생하는 연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430만 명에 이른다. 과음에 의한 간암 사망자도 6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똑같이 1군으로 분류되는 가공육의 과다 소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한 해에 3만 명을 넘지 않는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되지 않은 ‘2A군’과 ‘2B군’으로 분류된 물질을 ‘발암물질’이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발암물질에 대한 지나친 공포 때문에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IARC에서 ‘1군’으로 분류하는 발암물질은 정부·기업이 엄격하게 관리한다. 정부가 허용기준을 정할 때는 현실적인 기술적 한계와 함께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도 고려한다.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거나, 그런 기술을 활용하기가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소비자들에게 위험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실제 선택은 소비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돌부리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용량’이 독을 만든다

화학물질은 인체에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독성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독성학자 파라켈수스가 ‘모든 것이 독(毒)’이라고 했다. 건강에 꼭 필요한 설탕과 같은 탄수화물이나 소금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한 약(藥)도 복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파라켈수스는 “용량(dose)이 독을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이라도 충분히 적은 양을 섭취하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맹독성의 비상(砒霜)이나 봉독(蜂毒·꿀벌의 독)을 약으로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체에 독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용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뱀독·복어독·말벌독·버섯독처럼 즉각적이고 분명한 급성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독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용량은 커녕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생리 작용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암을 치료하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5년 이상 생존하는 ‘암 생존율’이 1995년 42.9%에서 2018년 70.3%까지 올라갔다. 갑상선암의 생존율은 99.3%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암 생존율은 세계 1위다. 암을 치료하는 수술·항암제·방사선요법 등의 치료기술이 놀랍게 발전한 결과다. 치료기술만 발달한 것이 아니다. 암의 조기진단에 필요한 MRI(자기공명영상)·PET(양전자 단층촬영)·내시경 등의 진단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치료할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도 암의 조기진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발암물질로 확인된 화학물질을 일부러 가까이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발암물질을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엔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보다 훨씬 더 강한 독성을 나타내는 물질도 많기 때문이다. 공연한 두려움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