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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3 대한민국 화학산업발전을 주도하다

화학연은 이러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신물질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선진기술의 모방이 아닌 새로운 물질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신물질 창출 연구를 본격화하는 한편 국가 대형연구개발사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화학산업 발전을 주도해갔다.

01 변화에 직면하다

1980년대 중반 화학연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그동안 해외 선진기술을 모방해 제품화하면서 기술을 축적하고 산업 규모를 넓혀가던 국내 화학산업에 물질특허제도의 도입으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화학연은 이러한 변화와 위기 속에서 신물질 연구라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1986.09.02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물질특허 도입 논란은 화학연이 설립 10주년을 맞은 1986년 들어 더욱 거세졌다.

창립 10주년 기념식

1987.04.28 “우리나라 화학산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선진국의 제품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선진국의 품질 좋은 농약을 모방해 만들어 싼 값에 농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남의 기술을 훔치는 것과 다름없었죠. 그렇다보니 선진국들이 한국의 화학 연구개발 활용에 우려를 갖고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하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조광연 박사

유망중소기업 초청간담회

1986.09.02 정부는 물질특허 도입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화학연을 비롯한 정밀화학산업계에 신물질 창출 연구능력을 키워나가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후 이에 필요한 기반시설과 연구비 지원을 포함해 범부처 차원에서의 대안을 마련했다. 화학연내에 신물질 창출 연구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연구비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신물질 창출 연구의 시작이 됐다.

창립 10주년 기념식

1987.08.17 화학연은 1987년부터 채택, 실시된 물질특허제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 정비에 나섰다. 1987년 3월 25일 유기화학연구부를 농약분야 신물질 연구를 위한 유기화학 제1연구부와 의약분야 신물질 연구를 위한 유기화학 제2연구부로 분리했으며, 화학공학연구부를 분리해 공업화학연구부를 신설했다.

농약활성연구동 기공식

1988.07.22 화학연은 새로운 조직을 기반으로 농약, 의약품 등의 생리활성물질을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신물질 창출 연구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외국기업들과도 협업시스템을 구축하고 필요한 기술들을 하나하나 흡수하기 시작했다.

안전성 국내 최초 KGLP 적격기관 지정

1988.07.27-29 “우리가 기존 제품을 모방 생산하다가 신물질 개발을 시작하니까 듀퐁, 훽스트와 같은 해외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화학연이 물질을 만들어 보내면 외국기업은 스크리닝을 해주는 하는 국제공동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크리닝하는 방법을 배우고 스크리닝센터를 만들고 하면서 신물질 개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쏟아져 나올 신물질 성과들의 씨앗이 그때 심어진 것입니다.”
-채영복 전 소장

제2회 한국화학연구소 고분자심포지엄 개최

1990.12.14 1990년 12월 14일, 화학연 제2연구동에서는 내빈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물질창출국책연구사업단 현판식이 개최됐다.
사업단에는 화학연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연구원, 신약조합. 신농약조합, 대학 등 산·학·연이 함께 참여했다. 화학연 등 정부출연연구소는 공통 기본기술을 확립해 이를 기업에 제공하고, 학계는 기초연구를 통한 분자설계기법과 새로운 합성법의 개발 그리고 고급인력 양성에 역점을 두었다. 기업체는 기업화 연구를 주도해 기술개발 여건을 조성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5-10개의 신물질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물질창출국책연구사업단 현판식

1989.12.01-02 “농약이나 의약 등의 신물질 개발을 하려면 ‘약효’도 좋아야하지만 ‘약해’가 없어야 합니다.농약은 다른 작물이나 사람을 포함한 환경에 독성이 있으면 안 되고, 의약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적용하기 때문에 독성이 없는지 철저하게 검증을 해야됩니다.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고 신물질연구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독성시험과 안전성평가 수준이 국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노정구 박사(1984. 4 ~ 1998. 12 재직)

신물질연구성과 발표회

02 창의적 연구활동을 모색하다

1990년대 초 화학연은 신물질 연구에 주력하는 한편 국가 대형연구 개발사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했다. 이러한 연구활동을 통해 선진기술을 국산화함으로써 우리나라 화학산업은 외국 기술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단계로 나아나기 시작했다.

1990.05.10 제1회 촉매워크숍

1987.08.17 우리 정부는 1992년부터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G7프로젝트(일명 HAN 프로젝트, Highly Advanced National Project)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신의약·신농약, 정보·전자·에너지 첨단소재, 신기능 생물소재 등 3개 부문에서 60개의 과제를 선정해 총 3백36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연구사업이었다. 화학연은 G7프로젝트를 입안하는데 중요한 정책적 역할을 했다.

농약활성연구동 기공식

1992.02.21 1992년 8월 6일, 평균 2.5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정부 각 부처별로 공모 마감된 G7프로젝트(핵심선도기술 개발사업) 연구수행기관이 발표됐다. 화학연은 12개 과제의 주관 연구기관으로 지정됐고, 7개 과제에 대해서는 참여 연구기관으로 지정됐다. 확정된 60개 중과제는 신의약·신농약 38개(1백 58억 원), 정보·전자·에너지 첨단소재 13개(97억 원), 신기능 생물소재 9개(80억 원)등이었다.

G7 신물질창출연구 신농약 개발 세미나 개최

1992.10.19 “199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R&D 단계는 선진기술을 따라잡는 추격형(Fast Follower)연구였습니다. 선도자(First Mover)로 나서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했는데 화학연은 국가연구개발 사업들을 통해 기초체력을 길렀습니다. 그 중 하나가 1990년대 초에 과학기술부가 10년간의 장기 사업으로 기획한 G7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각 분야에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이해방 박사(1984. 11 ~ 2002. 12 재직)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대표단 내방

1990.12.14 1993년에는 화학연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퀴놀론계 항생제 특허를 영국에 넘겨주면서 국내 특허 외국수출사상 최고액인 2천1백만 달러를 받았고, 같은 해 역시 세계 최초로 고성능 약물전달 초미세캡슐을 개발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에 물질특허와 공정특허를 신청했다.

신물질창출국책연구사업단 현판식

1994년에는 10여 년의 연구개발 끝에 마침내 폴리부텐 생산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해 (주)대림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이를 계기로 연간 800만 달러 상당의 폴리부텐을 전량 해외에서 도입했던 한국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위상이 크게 바뀌게 된다. 폴리부텐 생산기술은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대한민국 100대 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100대 기술에 선정된‘폴리부텐’

1994.03.08 1994년 3월 8일에는 화학연이 개발한‘ 초고순도 다결정 실리콘 제조기술’을 세계 굴지의 반도체 원료 제조회사인 독일 박커케미트로닉사에 기술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외국기술을 모방하던 한국 화학산업이‘ 기술수출의 나라 ’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화학연이 있었다.

고순도 다결정 실리콘 제조기술 이전 계약 체결

1994.04.28 화학연이 신물질 창출 연구에 주력하던 시기, 국내산업계에서는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1990년부터 석유화학산업 투자가 자유화됐다. 이로 인해 대기업들의 신규 진입과 기존업체들의 설비 신설, 증설이 매우 활발해져 1991년부터 1992년에 걸쳐 삼성, 현대, 럭키, 한양화학, 호남석유, 대한유화 등 대기업의 석유화학공장들이 속속 완공됐다.

기업체장 초대 행사 개최

1994.11.11 특정연구개발사업도 사업목적과 중점분야, 추진체계 및 관리체계 등 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특정연구개발사업은 핵심 산업기술을 개발해 산업 혁신에 기여하고, 공공복지와 사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범부처 및 산·학·연 공동연구체제를 확립한다는 목적 하에 추진됐다.

산.연 교류의 날 기업체 초대 행사 개최

1995.03.28 화학연은1991년‘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기능 재정립 및 운영효율화 추진’에 따라 직제를 재정비했다. 1992년 2월 연구부서를 통·폐합해 축소 개편한 데 이어 1993년에는 기존 연구실 사이의 벽을 없애고 연구총괄자의 책임 하에 연구 관리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29개 연구실을 폐지하고 연구책임자 중심제도인 PI(Principal Investigator) 제도를 도입해 연구그룹을 운영했다.

신물질연구동 신축 기공식